21년 차 에디터이자 에디토리얼 컨설턴시 ‘아장스망’을 이끌며 작가, 번역가, 강연 연사 등의 직업을 가진 최혜진 대표는 스스로를 직면하며 조금씩 새로운 일을 시도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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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로서 20주년을 맞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펴냈다는 책 «에디토리얼 씽킹».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을 담았다.
월간지 에디터로 시작해 브랜딩 컨설턴시를 차리기까지 최혜진 대표는 각도기 위 두 선이 점점 벌어지듯 자신의 직업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에디터 시절 몸속 깊이 새긴 주체적 태도를 바탕으로 익숙함을 경계하며 일을 놀이로 즐긴 덕분이다.
💡 평생 하나의 일만 하는 시대가 아님에도 첫 직업은 이후의 선택에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죠. 월간지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계기와 이유가 있나요?
저는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그 당시 대중문화의 꽃이 잡지였어요. 지금은 쇠락했지만 그때의 여가거리는 사실 잡지 말고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영화 잡지 같은 읽을거리가 있는 것을 즐겼는데, 해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지점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자유로운 영혼의 아티스트적인 기질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딱한 일을 하고 싶진 않았죠. 외부의 어떤 재료를 보고 이게 무슨 의미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훌륭한 것 같다고 해석하고 평하는 글을 즐겁게 읽었어요. 그래서 언론정보학과를 가겠다고 결심 했고, 졸업 후엔 글과 그림이 모두 담긴 잡지를 선택한 거예요.
💡 에디터라는 직업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인 일을 수행해요. 에디터로 일하며 갈고닦은 무기는 무엇인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만큼 하는 일이 많지만, 일단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무리 짧은 기사도 자기 이름을 내건다는 거예요. 막내 에디터한테도 네 이름을 걸고 네 생각을 설득력 있게 잘 꾸려 온전히 책임지라고 하잖아요.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너무나 빨리 느낄 수 있어요. 그게 결국 주체적으로 일하는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일이지만 내 일처럼 한다는 면에서 결국 일과 나를 딱 잘라 분리하지 못하는 직업이고, 회사에서 배운 것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에요.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잖아요. 기획 단계에서는 타깃에 맞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기사의 제목을 붙일 땐 핵심 메시지를 도출하는 방법을 배우죠. 글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각적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요. 그리고 늘 누군가에게 이런 걸 만들고 싶으니 같이 해달라고 초대장을 보내요. 인터뷰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태프의 머릿속에 같은 그림을 그려줘야 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의 이상향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엄청 중요하죠. 그리고 취재 과정이 꼭 필요하니 인간관계에 단련될 수밖에 없어요. 나의 벽을 계속 깨고 세상과 소통하게 만들어주는 직업이에요. 그렇게 나를 확장해가다 보니 어떤 직업에도 접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상태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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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기를 얻기 위해 습관화한 행동이나 새롭게 만든 루틴이 있나요?
책 속의 좋아하는 문장을 문서 파일로 정리해놔요. 거의 10년 정도 됐죠. 초반에는 끈기가 필요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제 보물창고라는 걸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우정에 대한 글 청탁을 받았을 때 일단 그 문서 파일을 열고 ‘우정’이라고 검색해봐요. 그럼 과거에 내가 읽은 책들 중 우정이 포함된 문장이 쫙 나오잖아요. 자기계발서, 시집, 인문서, 철학서가 뒤섞여 있죠. 그럴 때 새롭게 연결하면서 신선한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기존의 배열을 바꾸거나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어 재구성하면서 전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게 에디터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자신만의 아카이브가 진짜 무기더라고요. 일기는 25년간 써왔어요. 기분이 안 좋은 날에만 써요. 감정적으로 소화가 필요한 사건을 겪었을 때 그 느낌을 그대로 써 내려가다 보면 내 감정이 이해되면서 스스로 다룰 수 있게 돼요. 일기 또한 아카이브가 되어 지금까지 내가 그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바꿔왔는지, 혹은 그대로 유지해왔는지 보이기도 하고요.
💡 막내 기자에서 편집장 자리까지 에디터로서 20여 년간 일했어요. 오랜 시간 같은 업계에 머물 수 있었던 데에는 일을 통해 얻는 재미가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직업이 여러 개예요. 강연도 나가고, 번역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기업 프로젝트를 맡아 하고 있으니까요. 잠을 줄여가면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왜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세상에는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쾌감이 있어서예요. 취재부터 원고를 쓰는 과정은 힘들지만 고통을 견디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라고 어렵사리 내놨을 때 그게 누군가와 소통되는 기분, 그 짜릿함이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기에 자꾸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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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치고 힘들 땐 초심을 잃기도 하고,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헷갈리거나 무언가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잖아요.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그게 싫어지는, 더 이상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글드글 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요. 예전에는 참 재미있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권태감도 자주 찾아와요. 그럴 때마다 새로운 일을 벌였어요. 익숙하지 않은 일에 도전해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니 오늘이네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쓸 때 안 에르보 작가가 해준 말이 있어요. 어떤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익숙해진 것만 계속 수련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살 떨리고 겁나고 못할 것 같은 걸 할 때 나조차 몰랐던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대요.
💡 그렇게 익힌 일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에디토리얼 컨설턴시 ‘아장스망’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장스망은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는 건 내재돼 있는 속성이 아니라 어디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철학적 개념이에요. 에디터가 잘하는 일을 드러내는 단어 같아요.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하니까 그런 맥락으로 브랜딩을 하겠다는 결심을 담은 이름이에요. 그래서 주체적인 편집권이 있는지를 더욱 중요시해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만큼 책임지겠다는 뜻이죠. 많은 책임을 진다는 건 핑계 대지 않겠다는 뜻이자 어떠한 결과든 수용하겠다는 결심이고요. 주체적인 판단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영향력이 존중받는 구도 안에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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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내가 나로서 제대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하죠. 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존재라는 것부터 인정해야 하고, 그렇기에 지금의 나와 잘 지내야 해요. 에디터는 인터뷰를 많이 하잖아요. 그 질문과 대답을 내 안에서 해보세요. 그저 생각나는 걸 주저리주저리 적는 것 같겠지만 일기 쓰는 행위를 잘 들여다보면 질문하는 나와 대답하는 내가 그 안에서 대화하고 있거든요. 일기를 통해 외부의 사건을 스스로 의미화하는 과정이 저를 많이 지켜줬어요. 일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최종 편집은 내가 한다는 것만큼 단단한 무기가 없어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큰 방패이자 강력한 내적인 힘이 돼요.
💡 언제까지 지금의 일을 지속할 생각인가요?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하는 문제예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외부에 있다고 가정한 질문 같아요.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들을 계속할걸요? 그런 것들에 대해 덜 불안해지려면 일할 수 있는 판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짠 판이 커리어에 연결되는 경험을 조금만 해보면 어디 가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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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일은 놀이예요. 그리고 놀 듯이 할 때 제일 말랑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나와요. 너무 부담을 갖거나 일이 내 삶을 좌지우지할 거라고 생각하면 절로 경직되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일하고 싶지 않아요.
아장스망에선 주체적인 편집권이 있는지를 중요시해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만큼 책임지겠다는 뜻이죠. 많은 책임을 진다는 건 핑계 대지 않겠다는 뜻이자 어떠한 결과든 수용하겠다는 결심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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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전혜라
사진 제공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