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끊은 뒤 생긴 일
디지털 공간에는 오늘도 수백, 수천만의 이야기와 의견이 쏟아진다. 러쉬는 이 거대한 공론의 장을 ‘탈출’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브랜딩의 첨병이라는 모든 SNS 채널을 하루아침에 없앤 뒤 벌어진 일들이 궁금했다.
2021년 글로벌 뷰티 브랜드 러쉬는 소셜 미디어 활동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선언했다. 그것도 매출을 크게 끌어올릴 기회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춰서 말이다. 동물과 자연과 사람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더욱 러쉬스럽게’ 만들겠다고 밝힌 러쉬가 생각하는 건강한 디지털 환경이란 무엇일까. 러쉬코리아 에틱스팀을 이끄는 박원정 이사를 만나 물었다.
2021년 러쉬는 공식적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을 비롯한 SNS 활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소셜 미디어 활동 중단을 선언한 배경과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객 때문이에요. 러쉬는 고객이 항상 옳다고 믿어요. 매장의 역할 중 하나는 고객을 밝고 건강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것이고요. 온라인에서도 고객에게 매장에서와 같은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소셜 미디어를 시작했어요. 러쉬는 할인, 증정, 광고 등 일반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매장에서 만나는 고객과의 관계가 다인데, 소셜 미디어가 온라인에서 그 역할을 해줬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검색 기반의 광고나 알고리즘 조작과 설계, 의도치 않게 접하는 가짜 뉴스와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섭식장애, 우울증, 불안 등 역기능이 드러나더라고요. 온라인 플랫폼이 안전하고 건강한 곳인지 점검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청소년 정신 건강과 개인 정보 거래에 대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내부 고발도 결정적 계기였죠. 그렇게 2021년 11월 블랙 프라이데이에 최소한의 조치마저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왓츠앱, 스냅챗 등 5개 플랫폼에서의 활동을 24시간 안에 중단하자는 결정이 내려졌고, 모두가 90% 할인 소식을 전할 때 러쉬는 과감하게 소셜 미디어 중단을 선언했어요.
2016년 ‘#KeepItOn’, 2023년 ‘#BigTechRebellion’ 등 디지털 환경에 관한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그간 러쉬에서 전개한 디지털 관련 캠페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러쉬는 세계적으로 시급한, 우리가 나서야 할 만큼 절박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캠페인을 진행해요. 아무도 돕지 않는 작은 비영리 소규모 단체에 먼저 손을 내밀죠. 2016년 진행한 ‘#KeepItOn’은 중앙정부의 웹사이트 검열이나 통제를 모니터링하는 단체 ‘액세스 나우’를 알리고 지원하기 위해 배스 밤을 판매하고 기금을 모으는 펀드레이징 방식의 캠페인이었어요. 2020년에는 ‘디지털 디톡스 데이’라고 해서 정신 건강 단체 ‘#IAMWHOLE’, 영국 유명 유튜버 조이 서그와 함께 하루 동안 소셜 미디어를 멀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캠페인에 동참한 사람들은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운데 ‘OFF’라고 적어 인증하고, 이후 소셜 미디어 대신 실제 삶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해보며 쉼의 중요성과 SNS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겼어요. 드디어 2021년 소셜 미디어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2023년에는 글로벌 시민단체연대 ‘People vs Big Tech(PvBT)’와 빅테크 기업의 반독점에 맞서는 ‘빅테크반란’ 캠페인을 펼치며, 지금까지 10여 년간 디지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소셜 미디어 활동 중단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옳다고 믿고 밀고 나갔어요.
콘텐츠 사용량이 덩달아 줄었다는 고객들의 후기나 오히려 매장에 더 자주 방문하면서 러쉬에 대해 밀도 있게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뿌듯해요.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 당시 조작 가능한 알고리즘과 위험 요소를 묵과하는 느슨한 규제로 인한 폐해를 언급했어요. 현재의 SNS가 사람들에게 건강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근거가 궁금하네요.
자체적으로 각국에서 디지털 리서치를 진행하는데, 일본에 살고 있는 성인 10명 중 7명은 비윤리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경우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대요. 또 소비자의 57%는 대기업이 기술과 온라인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55%는 빅테크 기업들이 온라인에서 지나치게 통제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어요. 현실 세계보다 디지털 공간이 더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3명 중 1명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Z세대는 디지털 공간에서 특정 그룹이 소외되거나 무시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관련 법이 여러 나라에서 통과되거나 기업 차원에서 스크린 타임, 다크 모드 등 조치를 취하는 일도 지금의 디지털 환경이 건강하지 않다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겠죠.
어쨌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결정적 홍보 수단이자 고객과의 소통 창구인 SNS 활동을 포기하고 디지털 캠페인을 지속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브랜드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소셜 미디어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SNS는 디지털 세상에서 나의 정체성이자 집이잖아요.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옳다고 믿고 밀고 나갔어요. 그러던 와중 팬데믹이 겹치면서 브랜드는 점점 잊히고 매장에도 고객이 끊기기 시작했어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거죠. 대안으로 유튜브 팀을 만들고 자체 앱에 투자하며 건강한 디지털 판을 키워갔어요. 다행히도 MBTI 유행과 함께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러쉬의 텐션이 입소문 나면서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죠. 콘텐츠 사용량이 덩달아 줄었다는 고객들의 후기나 오히려 매장에 더 자주 방문하면서 러쉬에 대해 밀도 있게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뿌듯하고요.

SNS를 중단한 의도에 걸맞은 효과가 있었나요? 내부적으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 투 베이식,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리마인드 교육을 진행했어요. 오프라인 매장 대부분이 팝업이나 플래그십으로 바꾸고 거의 다 온라인으로 옮겨가지만 저희는 매장에서의 좋았던 경험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특히나 러쉬는 고객과 일대일 컨설테이션을 통해 아주 짧게라도 브랜드 이념을 담아 제품을 설명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고객과 직원이 서로의 여정을 나누는 경험이 언젠가는 희귀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에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도 매장을 늘리는 중이에요.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 아직까지는 잘되고 있어서 열심히 해보려고요.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 세상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었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유혹을 받고 있는지 솔직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요.
글로벌 미팅 때마다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관련 법도 통과됐고 SNS 플랫폼에서도 조금씩 조치를 취하며 개선되고 있는 것 같으니 다시 소셜 미디어 활동을 해보면 어떠냐면서요. 아직까지는 재개할 계획이 없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도 뜨거운 감자예요.

러쉬가 사회적, 환경적 이슈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는 또 다른 캠페인에는 무엇이 있나요?
지속 가능에서 더 나아가 윤리적인 리제너레이티브 바잉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원재료를 구매할 때는 동식물의 생물 다양성이 지켜지는지 검토하고, 환경과 더불어 원주민을 도울 방법을 고민해요. 올 4월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긴꼬리원숭이가 서식하는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보호하기 위해 ‘키스톤’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마카크 배쓰 밤’의 판매 수익금을 멸종 위기 동물의 서식지 복원, 생태계 균형, 핵심종 보호, 토착민과 야생동물의 환경 재건 사업에 후원하려고요.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 활동을 펼치며 다양한 문제에 집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러쉬가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와도 맞닿아 있겠죠.
브랜드의 태생 이유이기도 해요. 러쉬는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방언으로 ‘싱싱한, 우거진, 풍요로운’을 뜻해요. 그러니까 세상을 더욱 러쉬스럽게 만든다는 말 안에는 숲이라는 본질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앞서 말했듯, 러쉬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에 가장 절실하고 급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해요. 기후 재생, 플라스틱 생산 중단,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신 건강 등에 대해 계속해서 조명하는 식이죠. 고객들이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제품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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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전혜라
Photographer 이재경 Illustration Graphicook Studio(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