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잇는다는 마음으로 박진희의 무해한 삶 

지구를,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박진희는 두 아이가 마음껏 숨 쉬고 뛰놀 수 있도록 그저 오늘 할 일을 해나갈 뿐이다.

다만 분명한 확신은 있다.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엄마로서 더 이상 환경에 대한 고민을 개인의 영역에만 둘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결심을 한 뒤 그녀는 ‘환경운동가’라는 두 번째 직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박진희에게 지구가 처한 위기, 환경문제는 오랜 고민이자 숙제다.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을 따지자면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낯설던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환경운동가라는 호칭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호칭을 처음부터 선뜻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엄격한 자기 검열과 개인의 나약함을 느끼며 좌절을 느낀 것. 그 와중에도 지구에 무해한 삶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더 이상 환경운동가로 불리는 것이 두렵지 않다. 자신이 엄마에게 자연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마음을 물려받았듯, 이제는 스스로 두 아이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얻은 답은 명쾌하고 뚜렷하다. 바로 깨끗한 지구다. 엄마라는 이름의 세대 연결자가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이유다.



TV 프로그램과 강연을 통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작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요즘에는 배우 활동보다 환경과 관련한 강연이나 연설 일이 훨씬 많아요. 오늘도 환경, 인권 문제에 대해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2025’에서 기조연설을 했어요. 특히 여름에는 폭염 같은 날씨 변화로 기후위기를 체감하다 보니 그런 자리가 더 잦아져요. 작년 여름에도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녔어요. 사실 기후위기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한때는 환경운동가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밝혔어요. 이제는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재작년 여름부터 강연 기회가 더 늘었어요. 저보다 전문가가 많지만 오히려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해본 사람이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나 봐요. 그런데 강연을 나가 보면 ‘배우 박진희’가 아니라 “환경운동가 박진희 씨를 모시겠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초반에는 저보다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좀 죄송스러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배우 활동을 하는 날보다 환경에 관련된 일을 하는 날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러다 보니 두려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로 이제는 환경운동가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스스로를 환경운동가로 규정한 뒤 생긴 일상의 변화가 있나요?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상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분명 있을 텐데 이렇게 얘기해도 될까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저 내 길을 가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 행동과 말이 옳지 않으면 돌도 맞아야지, 나쁜 말도 들어야지 하는, 용기라면 용기고 책임감이라면 책임감인 게 좀 생겼어요. 열심히 하고 받아들이고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에 책임질 수 있는 값을 해야겠다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말도 더 많아지면서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기분이 들어요.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푸르지니’를 개설하고 자연 속에 집 짓기, 친환경 쇼핑 노하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있죠?

집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늘 남이 지어준 집에서 살았단 말이에요. 이제는 내가 지은 집에서 한번 살아보자, 그게 과연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같은 고민들을 해보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집 지을 땅을 찾다 보니 법이나 행정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땅 찾는 모습만 계속 보여줄 수는 없어서 제가 관심 있는 것,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 역사나 환경 쪽으로 콘텐츠를 이어간 거예요.


콘텐츠로는 잠시 중단됐지만 땅은 계속 찾아보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이에요?

숲 한가운데 작은 집 하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전기와 물이 없이 사는 집이요. 전기 없이 사는 게 가능할지, 너무 불편하지 않을지, 그래도 지낼 수 있을지 일단 시도해보고 싶거든요. 물을 아예 안 쓸 수 없으니 10L짜리 통을 가져가면 며칠 만에 다 쓸지도 궁금하고요. 한번 살아보고 어렵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할지 방법을 찾고 싶은 거죠. 이전에도 계속 실패하고 도전해왔거든요. 샴푸 바를 쓰기 전에는 밀가루도 써보고 창포물로도 감아보고, 아예 샴푸를 안 쓰는 ‘노푸’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다양한 옷을 입어보면서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듯 지속 가능한 생활 습관과 라이프스타일도 그렇게 알아가는 거죠.


20대부터 환경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왔어요. 지구와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생각해보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자연의 변화에 무척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엄마의 예민함이 변해가는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게 만든 거죠. 그래서인지 저희 두 아이도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7살인 둘째가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첨벙첨벙 놀려고 하니 첫째가 물 낭비라며 너무 속상해하더라고요. 쟤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물을 저렇게 많이 받아 목욕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런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10살짜리가 깨닫고 7살인 동생에게 가르쳐주는 거잖아요. 제 교육 방법이 먹히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첫째에게는 네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고, 둘째에게는 이건 물 낭비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죠.


엄마라는 세대 연결자가 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이 훨씬 커졌을 듯해요.

20대에는 환경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고 그런 노력들을 스스로 찾아서 했어요. 그때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틀렸고 이게 옳은 거라며 외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드니까 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 이건 여러 면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조심하게 됐죠.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환경문제는 더 심각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밖에서 나가 놀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정도니까요. 내가 관심 있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더 내고 안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구나 하는 나름의 이유를 찾았어요. 이렇게 뒀다가는 끔찍한 세상이 올 텐데, 우리 아이들을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제가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세상을 위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어른들 때문에 오염된 물과 공기, 환경을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하는 아이들, 미래 세대에게 미안하다는 마음과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해요.


기후변화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기후우울증도 겪었다고요?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환경 관련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기후 문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희망이 없는 거예요. 너무 늦었어요. 북돋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특히나 개인이 노력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에요. 전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적인 법과 조약,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해야 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인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계속 생각하니까 한없이 우울해지더라고요. 결국 그 우울함에서 저를 끌어낸 건 내일 인류가 다 죽는다고 하더라도, 지구 전체가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할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지금 당장 죽을 게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도록 만들었어요.


두 아이에게 환경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어릴 때부터 반드시 지키도록 한 습관이나 규칙, 가장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면요?

“물 틀어놓고 양치하지 말고 컵을 써야 해” “안 쓰는 불 켜놓고 있으면 안 돼” “너무 따뜻하게 지내지 말자. 원래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거야” 같은 말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행동으로 옮기면 엄청 칭찬해주고요. 그러면 아이들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학습이 됐겠죠. 얼마 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몬스테라잎이 약간 찢어져서 제가 밴드를 붙여놨어요. 줄기와 연결이 돼야 물이나 영양분을 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첫째가 보더니 “엄마, 너무 스위트하다” 이러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엄마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밴드를 붙여놨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아이들이 최소한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과 존엄을 지키며 살겠구나 싶어서 뿌듯했어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실천과 공존, 타인에 대한 배려 등 더 큰 가치관들과 연결되기 마련이에요. 환경운동의 원동력과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원동력은 저희 아이들이죠. 적어도 깨끗한 물과 공기, 땅에서 아이들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소망이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목표로 우리 아이들을 원동력 삼아 열심히 하는 중이에요. 저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돼버렸으니까요. 희망이 없다고, 늦었다고 느껴져도 저는 저기 놓인 쓰레기를 주워야 행복한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불행해지는 사람이고요. 아까도 얘기했듯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저는 그저 제 할 일을 할 거예요.



" 제가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세상을 위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어른들 때문에 오염된 물과 공기, 그리고 환경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하는 아이들, 미래 세대에게 미안하다는 마음과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해요. "



#주부생활60주년 #박진희 #배우박진희 #환경 #환경운동가 #푸르지니 #인터뷰


Editor 전혜라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