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이 삶의 전부가 된다면



이타심은 나보다 다른 존재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동물과의 공존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매거진 편집장이자 포토그래퍼 김현성의 이야기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이타심을 발견하게 한다.


저는 제가 행복한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한 시간이 넘는 김현성 편집장과의 대화 속에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은 말이다. 세상 모든 이가 나의 행복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된 이 시대, 내 행복에 관심 없다는 말은 꿈에서나 들을 법한 말처럼 생경하게 다가온다. 동물 복지를 녹인 패션 매거진 <오보이>를 창간한 지 16년째.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지만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이를 주제로 한 매거진은 어째서인지 유일무이하다. 이러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창간 이후 김현성 편집장은 친환경 편집숍이자 중고 매장 ‘오보이 커뮤니터 센터’를 오픈하고 3년 전에는 ‘언셀프(UNSELF)’라는 행사를 개최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김현성 오보이 편집장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지난 10월 19일, 세 번째 ‘언셀프’를 잘 마쳤어요. 행사 이후에는 봉사단과 함께 보호소에 직접 찾아가 판매 수익으로 물품을 기부하고 청소 봉사를 하며 마무리하곤 하는데, 어느 보호소를 갈지 논의 중이에요. 개들도 처음 보는 사람을 낯설어하는 면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전국에 보호소는 정말 많고 일손은 부족한 실정이죠. 청소해도 금방 더러워지기 때문에 하루 봉사로는 턱도 없어요. 대부분 보호소 봉사를 다녀오면 우울해지더라고요. 참, 현실이 그래요.


누군가에겐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동물권과 환경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저는 용기가 없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대신 매거진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오보이> 창간을 결심한 결정적 순간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거두신 덕분에 수많은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컸어요. 집에 동물이 정말 많을 땐 30마리 이상이었던 적도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밥 주는 것이 제 일상이었죠. 당연히 같이 살던 동물과 이별하는 일도 숱하게 겪었고요. 결혼하면서 개 두 마리를 신혼집에 데려갔는데, 그 아이들을 차례로 보내고 나니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이전까지 동물들이 가족이었다면, 그 두 마리는 자식 같았달까. 그 이별을 계기로 제가 가장 잘하는 일로 동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오보이>를 창간하게 되었죠.



<오보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었어요. 너무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인간이 동물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며 동물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도축하고 먹고 학대하며 끊임없이 착취하죠.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해 동물은 미물이고,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원 중 하나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이 지점에서 <오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이용하는 동물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거예요. 동물을 인간과 더불어 가는 존재로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그게 <오보이>의 지향점이에요.


그 목표는 현재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지난 10년간 많이 변한 것 같긴 하지만, 객관적인 수치로 봤을 때 미미해요.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 문제는 제자리걸음이죠. 또 다른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삶이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 더 많이 신경 쓰고, 더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보이>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오프라인 행사인 언셀프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수익금을 보호소에 기부하고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사실 <오보이>로는 한 번에 임팩트 있는 반응을 얻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소소하게 조금씩 바꿔나가도록 설득하는 게 저만의 방식인 것 같아요. 저조차도 어떻게 16년 동안 이런 책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가끔 <오보이> 화보를 찍은 아이돌의 팬들이 자체적으로 기부 행사를 열어 수익금을 보호소에 기부했다 등의 소식을 들으면,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보이>를 이토록 오랫동안 발행해온 동력은 무엇인가요?

사실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동물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일념이 있으니까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별로 힘든 적이 없었어요. 화보에 참여한 아티스트나 독자들의 반응이 큰 힘이 됐고, 그 동력으로 계속 만들어온 것 같아요.


설득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자신만의 방법이나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저는 활달한 성격도 아니고 누군가를 살갑게 대하는 방법도 잘 몰라요. 1997년부터 사진을 찍으며 관계를 맺어온 이들에게 <오보이>를 창간하면서 ‘나 이런 잡지를 만드는데 같이 화보 찍자, 광고 해달라’며 처음으로 부탁을 했어요. 말하자면 영업을 한 셈이죠. 아쉬운 소리 한번 안 하던 사람이 그렇게 요청하니 다들 재미있었나 봐요.(웃음) 잡지를 만드는 동안 선뜻 도와주겠다는 주변 사람들 덕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진심이 통했나 봐요.

동물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는 게 일상이라 저는 늘 화가 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마리의 동물이 고통을 받고 있고 죽어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거든요. 사실 제 행복에는 관심이 없어요. 제 삶에 어떤 좋은 일이 생겨도 그다지 행복하지가 않아요. 그냥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환경과 동물권을 다루며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을 텐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잖아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 동물 애호가들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려동물의 경우 특정 품종이 갑자기 많이 팔리면 또 그만큼 유기되기 마련이거든요. 동물원도 마찬가지고요. 단순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만 보고 동물을 생명이 아닌 캐릭터처럼 소비하는 경향이 있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일은 결국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역효과를 불러올 때가 많거든요.


‘동물권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을까요?

사실 제가 정신없는 업계에 몸담고는 있지만,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오보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아니라 동물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미디어에 노출하는 것도, 영업과 홍보를 전방위적으로 하는 것도 오로지 동물 때문이죠.


오프라인 매장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그렇죠.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오픈한 지도 벌써 9년이 됐네요. 사실 정해진 시간에 여는 정식 매장은 아니에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오보이>에서 소개하고 싶은 친환경 제품이나 동물실험 없이 만든 제품을 채워두고, 방문한 사람이 구매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판매하는 형식으로 운영 중이에요. 지하 세컨핸드 매장에 있는 대부분은 물욕이 넘칠 때 샀던 제 물건들이에요. <오보이>가 지향하는 현명한 소비를 제안하는 동시에 판매 수익은 동물 보호소에 기부하고 있어요.



사진가이자 기획자로서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과 윤리를 지키는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고 있나요?

<오보이>를 16년째 만들다 보니 동물과 관련된 콘텐츠 제작 의뢰가 다양하게 들어오곤 해요. 저도 동물들과 촬영을 많이 했지만, 그런 콘텐츠 자체가 동물에게 이로울 리가 없어요. 동물을 향한 관심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불행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럼에도 제작을 하게 된다면 현장에서 동물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콘텐츠 방향 역시 동물이 너무 쉽게 소비되거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와 삶에 대한 존중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나눔과 봉사는 선행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이런 흐름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앞서 언급했듯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자신의 신념을 경계해야 하는 것 같아요. 뭐든 관심이 많아지면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앞으로 <오보이>가 다루고자 하는 새로운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를 어떤 형식으로 풀어내고 싶은지 들려주세요.

앞으로는 동물이나 환경 메시지를 조금 걷어내더라도 대중이 재미있고 힙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풀어내고 싶어요. 그래야 더 상업적으로 영향력이 생기고, 실질적인 수익 모델도 만들어지니까요. 사실 기업이나 브랜드가 처음부터 ‘기부’를 목적으로 설립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동물보호단체나 환경단체는 말 그대로 보호와 환경을 위해 존재할 뿐 상업적인 곳이 아니고, 기업의 경우 대부분 수익 중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이잖아요.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싶어요. 처음부터 동물과 환경을 위해 기여하는 것을 설립 목적에 둔, 그러나 동시에 충분히 상업성과 규모를 갖춘 브랜드나 단체를 만들어보고 싶은 거죠. 물론 제가 상업적인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뜻을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10년 안에 그 꿈을 이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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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진명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