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안고도 다시 한발 내딛는 마음
가수 자두삶이 데려다 놓은 자리에서 어디로 갈지를 물 흐르듯 담담히 선택하는 일. 지금의 자두가 선택한 결론이다.
근황이 궁금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요즘은 다시 무대와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지내고 있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스케줄이 많이 생겨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네요. 찾아오는 기회를 기다리기보다 ‘찾아가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죠. 동시에 내년 초에 발표할 새 앨범 준비로도 꽤 분주해요. 곡을 만들고 사운드의 결을 맞추는 과정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그 분주함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져요. 다시 음악 안으로 들어가 살고 있다는 기분이 선명하게 느껴지거든요. 또 나눔 콘서트처럼 비교적 작은 공연들로 사람들 곁에 가까이 가닿는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최근 <싱어게인4>에서 자두만의 에너지와 실력이 다시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무대를 준비할 때 ‘어떤 마음으로 다시 인사를 할까 고민했다’고요.
사실 <싱어게인4> 출연을 정말 많이 망설였어요. 저는 누군가와 비교되거나 견주어지는 ‘경쟁’이라는 구도가 굉장히 낯선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래서 ‘경연’이라는 말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거든요. 무대를 경쟁의 자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다시 움츠러들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 고민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어느 순간 이 무대는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다시 ‘인사’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경연’이라는 단어보다 ‘어게인’이라는 단어에 더 집중하게 됐죠.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향하고, 시간과 마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걸 무대를 통해 일찌감치 경험했던 터라 그 감각을 되살리자고 생각했어요. <싱어게인4>는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시 인사를 건넬 수 있는지 묻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싱어게인4>를 ‘나와 화해하기에 적절한 무대’라고 표현했군요. ‘화해’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어요. 어떤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나요?
벗어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타이밍이 찾아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저는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 채 살아왔어요. 학창 시절 ‘록키드’였지만 대중가수를 꿈꿨던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무대는 ‘인기’를 얻는 공간이라기보다 나를 ‘표현’하는 곳이라고 믿어왔어요. 삶이 우연히 저를 ‘자두’라는 자리로 데려다 놓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결핍처럼 느껴진 순간들도 있었죠. 지금 돌아보면 그 감정은 나 자신을 충분히 인정하지 못했던 열등감과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오만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마음들은 삶이 ‘지금’이라고 신호를 줄 때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화해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품은 채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실패와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용기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고도 했죠. 스스로가 생각하는 ‘용기’는 어떤 마음에 가까운가요?
저에게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한발 내딛는 마음에 가까워요. 실패와 실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만들어요. 그러나 조심성이 깊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전 자체를 멈춰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두려움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어요. 요즘 더욱 뚜렷하게 붙잡고 있는 생각은 ‘출발점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디로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미 지나온 시간과 제가 겪어온 실수들, 마음에 남은 구겨진 자국들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안고 어디를 향해 걸어갈지는 지금도 선택할 수 있죠. 그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지금의 제게는 용기입니다.
김천김밥축제 때 했던 공연이 화제가 되었죠. “이제 자두가 김천 축제에 안 오면 서운하다” “김천의 딸이다” “자두 덕분에 김천이 유명해졌다” 같은 재미있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이런 댓글들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웃음이 났어요. 마음이 몽글해졌고요. ‘김밥’이라는 노래가 사람들의 추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는 게 무척 감격스러웠고, 무대 위에서 받는 큰 환호보다 ‘함께 시간을 나눴다’는 감각이 더 오래 남았어요. 김밥은 늘 우리 곁에 있고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잖아요. 무언가를 ‘말아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어떤 날은 기쁨을, 어떤 날은 피로와 눈물, 웃음을 함께 넣어 하루를 말아내고, 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되는 모습을 저는 무대에서 지켜봐왔어요. 그래서 ‘김천의 딸’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삶 속에 제 노래 한 줄이 말려 있다는 고백처럼 들리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노래를 계속 붙잡을 이유가 더 선명해져요.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온 만큼, 무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아요. 관객과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노래를 할 때 소리보다 먼저 마음의 방향을 정해요. 누구에게 말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건네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죠. 큰 무대든 작은 무대든 그 마음의 방향은 늘 같아요. 초점은 마음이고, 관객과의 상호적인 교감이죠. 관객은 노래보다 진심을 먼저 듣는다고 믿어요. 마음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이, 마음이 깊으면 그 깊이가 그대로 전달되죠. 그래서 저에게 무대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자리에 가까워요. 그 마음이 정확히 닿을 때 비로소 연결이 이루어지고, 무대는 누군가에게는 고백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축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관객과의 연결은 기술이나 연출보다 진심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요.
과거에 비해 무대에 대한 부담이 많이 덜어졌다고요.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움이 생길 때 균형을 되찾는 방법이 있나요?
예전에는 흔들릴수록 더 바쁘게 움직였어요. 멈추면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이 컸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멈추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처럼 때로는 움직임보다 멈춤이 더 큰 힘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대부분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온다고 느껴요. 그래서 그때그때 내 마음과 기분을 선택하는 일이 물건을 고르거나 누구를 만날지보다 훨씬 더 무게감 있는 일이라는 걸 인식하면 마음의 중심이 다시 잡히기도 해요. 예전에는 큰 일도 작은 마음으로 대했다면, 지금은 작은 일도 큰 마음으로 대하려고 해요. 그게 삶의 중요한 태도가 됐어요.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오게 한 힘은 어디에서 왔다고 느끼나요?
돌이켜보면 그저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 오랜 친구들, 함께 음악을 만들어온 동료들이 늘 곁에서 지지해주었고요. 저는 꾸준함이 거창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을 받은 사람이 다시 마음을 돌려주는 순환,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힘이라고 믿어요.
요즘 좋은 자극이나 영감을 준 사람이나 콘텐츠가 있나요?
최근에는 이찬혁 씨의 음악과 무대를 보며 큰 해방감과 위로, 그리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또 제가 병행하고 있는 팀 ‘마음전파상’의 멤버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인 화평이를 통해서도 음악적 동력을 얻고 있고요. 병렬 독서를 즐기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을 보는 시간도 좋아해요. 저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일종의 동경이자 리스펙트에 가까운 시간들이에요
현재 준비 중인 새 앨범에 대해 살짝 ‘스포일러’를 해준다면요?
아직은 뚜렷한 스포일러를 알려주기는 어렵습니다만, 지금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호흡과 감정의 온도를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흔들림까지도 음악 안에 진짜 기록처럼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2026년에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거나 더 잘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새해에는 밴드로서 페스티벌 참여도 활발히 이어가고 싶어요. 방송 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하며 더 많은 분에게 다시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가고 싶어요. 무대와 방송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 안에서 삶의 노래와 이야기가 더 많은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고요. 제 팀인 ‘마음전파상’의 활동도 음악과 나눔,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으로 확장해보고 싶어요. 멈춰 있던 시간들, 잠시 보류해두었던 마음들까지 끌어안고 다시 한 걸음 내딛는 해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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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