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거나 배우거나


생사를 넘나든 교통사고, 네 번의 요식업 실패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해답을 구하고 시도하는 삶의 궤적 그 자체다.

 



방송인이자 작가 고명환과 인터뷰한 지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22년 이맘때 우리는 독서 습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요식업을 네 번 실패한 인물로 다시 앞에 앉아 있다. 그를 보자마자 3년 전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다. 니체의 인간 정신 발달 3단계에서 착안한 ‘독서 발전 단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초보 독서가를 낙타로, 나만을 위해 책을 읽는 애독가를 사자로, 타인을 위한 독서가를 어린아이로 비유한 것이다. 당시 그는 어린아이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그의 실패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분명한 건, 그때보다 훨씬 단단한 목소리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하루에 강연을 두세 개씩 했어요. 1년에 400회 이상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타인을 위한 독서가’, 즉 ‘어린아이’라고 칭했죠. 어린아이의 리얼한 일상은 어떤가요?

애들은 놀지 말라고 할 때까지 놀잖아요. 놀이도 아이디어거든요.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잘 놀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해요. 지난해 11월 ‘고명환의 독서 열차’를 처음으로 진행했어요. 어느 날, “평일 오후, 기차에서 책 읽으며 춘천에 가서 닭갈비 먹고 산책하고 올 분들, 12시 50분 기차를 예매하세요”라고 SNS에 공지를 했죠. 저는 30명 정도 예상했는데, 220명이 왔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저는 단지 재미있는 일을 하나 구상해 훅 던졌을 뿐인데, 그게 타인에게 즐거움을 준 일이 되더라고요. 그때 엄청난 성취감이 느껴졌어요. 저도 뭔가 화답하고 싶어서 서프라이즈 선물로 기차를 탄 이들에게 ‘고독’이라는 캐릭터 키링을 선물했어요. 작은 나눔이었는데도 모두가 행복해했고, 그 모습을 보는 저도 행복감이 배가됐죠. 그 기쁨의 선순환을 깨닫고 실천하면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실패’라는 주제로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이러면 딱 좋겠다 생각했어요. 하얀 지면에 “나는 고명환 작가와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라고 딱 한 줄만 쓰는 거예요. 혹은 “여러분, 고명환 작가의 책을 읽고 이 빈칸을 채워보세요”.(웃음)

 

그럼 큰일 납니다. 하하. 인생을 반추했을 때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이었나요?

자본주의적으로 봤을 때는 요식업에 네 번 실패한 일인 것 같아요. 망할 때마다 전 재산을 날렸으니까요. 저는 사실 ‘가장’ ‘제일’ 같은 단어에 갇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 유일하고 절대적인 건 없거든요. 가장 행복한 날? 가장 도움이 된 책? 가장 실패한 일?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순간이 실패고 괴로운 날도, 또 모든 순간이 다행이고 행운인 날도 있겠죠. 그런 게 인생 아닐까요.

 

결국 실패하는 것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죠?

오히려 섣부른 승리가 인생의 가장 큰 실패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봐요. 특히 제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는 그런 경우가 허다하고요. 물론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 본인의 그릇 크기보다 더 큰 부와 명성을 단기간에 얻었거나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우선 경계해야 해요. 또 하나, 실패와 성공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도 위험해요. 우리 이제 다 알잖아요. 인생, 사람의 일이란 게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나요. 저는 제 삶을 돌아봤을 때 ‘그때 실패 안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거든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성공과 실패는 모두 경험이란 이름으로 관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위기와 기회’라는 두 갈래 길로 나뉘죠. 예전에 갈빗집을 할 때 예능 프로그램 팀이 경기를 끝내고 회식을 하러 온 적이 있어요. 방영 전이라 저는 경기 결과를 알 수 없었지만 누가 봐도 팀 분위기가 초상집이더라고요. 당시 감독이었던 정대세 전 축구 선수가 뒤늦게 회식 자리에 합류해서는 이런 말을 했어요. “저는 평생 축구를 해왔는데, 축구 인생에는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이기거나”라고 하니까 뒤이어 선수들이 힘없이 웃으며 “지거나”라고 했죠. 그러자 정 감독은 “아뇨, 배우거나”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완전 소름이 돋았어요. 그의 말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이기거나 배우거나예요.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습관이나 실천 방법이 있다면요?

뭔가 담담히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 종착점을 너무 일찍 찍는 경향도 있다고 봐요. ‘이 정도 노력해서 안 되는 거면 진짜 안 되는 거야’ 같은 말을 쉽게 꺼내기도 하죠.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 해야죠, 될 때까지. 어떤 사람들은 시간의 철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도 해요.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펴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시간이 필요해요. 뭐든 빨라진 세상 속에서 어떤 젊은 친구들은 그 과정을 잘 견디지 못해요. 내성을 키우는 방법은 책을 읽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책에서 새로운 인생을 얻은 덕도 있지만, 실제로 독서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기도 해요. 특히 문학은 내용에서 얻는 메시지보다 끝까지 읽는 힘, 즉 견디는 힘을 길러줘요. 실패가 열매를 맺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죠. 평범을 반복해야 비범해지거든요. 피카소가 앉아서 그림을 수백만 장 그리다가 입체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요.

 

매일 아침 유튜브 채널에 긍정 확언을 읽는 영상을 올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지금 가장 큰 승부를 던질 수 있는 힘은 꾸준함이에요. 오늘 1463번째 영상을 올렸어요. 1000일 넘게 매일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이 영상을 1만 일이 될 때까지 계속 올릴 거예요. 76세의 아침에도 긍정 확언을 말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성공한 것 아니겠어요?

 

직접 겪은 경험 못지않게 책에서 얻은 통찰도 크겠죠?

책을 읽지 않으면 이런 시각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실패보다 가장 무서운 건 달아나는 거예요. «노인과 바다»에 이런 명대사가 나오죠.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 자기 계발서 쓰는 작가들의 모임이 있어요. 만약 모임원 중 한 사람이 실패를 했다고 쳐요. 그럼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돈은 좀 날렸지만 글감은 생겼다고 말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죽음 앞에 섰던 교통사고, 요식업의 실패가 없었다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등지고 도망치지만 않으면 돼요.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죠. 노자의 말처럼, 언어라는 건 되게 작은 도구라 제 말들이 누군가에게 큰 울림을 주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요.

 

그럼에도 꾸준히 강연을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하고 살지는 말자고요. 무지가 가장 무서운 거니까요. 가장 큰 실패는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생각이란 나와의 대화를 일컫고요. 제가 올해 본 문장 중 가장 와닿는 것이 “‘죽다’는 주변과 온도가 같아지는 것이다”예요. 토끼는 죽어갈 때 끝까지 버둥거리거든요. 그건 계속 체온을 높이려는 행위예요.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거죠. 실패라는 말 대신, 나는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시간을 버티듯, 떼우듯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는 무슨 일로, 혹은 어떻게 하면 더 뜨거워질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독자들이여, 마음껏 뜨거워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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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진명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