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로 나아갈 용기


이은애 비영리사단법인 씨즈 이사장누구나 잠시 웅크릴 때가 있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둔·고립 청년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을 통해 방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 이들은 그곳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두더집’에 모여 함께 집밥을 먹으며 조금씩 나를 회복해간다.




‘두더집’ 분위기가 참으로 따스하고 평온해요. 골목에 위치한 주택이라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기분이에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제 별명이 외할머니가 됐어요.(웃음) 평소에 왜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하며 지적받다 두더집에 오면 어릴 적 엄마 아빠 손잡고 가던 외갓집 같대요. 말 한마디만 해도 모두가 웃으며 지지해주던 그때처럼 말이죠. 2022년 8월, 두더집의 문을 열기 전 6개월 정도 어떤 공간이 적합한지 실험했어요. 예쁜 사무실이나 청년센터에서도 프로그램을 해봤는데, 은둔 청년들은 집에서 계속 누워 있다 보니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처럼 눕고 쉬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맞다고 판단했죠. 처음 오는 친구들은 거실 소파에 그냥 누워 있어요. 청년들이 말하더라고요. “여긴 평가받지 않고, 그냥 있어도 되는 곳 같다”고요. 처음 두더집이 생겼을 때 동네 할머니들이 어떤 공간인지 무척 궁금해했어요. 한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청년들의 경로당, 몰라?”(웃음)

 

‘두더집’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두더집을 운영하는 비영리사단법인 씨즈는 2010년에 설립됐어요. 저희의 문제의식은 명확했어요. 지금 청년 세대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죠. 고학력 사회가 되었고 경제 규모도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다 보니 청년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깊은 절망감을 동시에 겪고 있었어요. 씨즈의 초창기 10년 동안의 과제는 도전하는 청년들을 위한 해법을 찾는 것이었어요. 빈집을 얻어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등 청년 세대가 느끼는 여러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 방식으로 창업을 도왔죠.

 

그러다 ‘은둔·고립’ 문제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이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할 무렵 씨즈도 재택근무로 전환했어요. 열심히 사는 인턴 셋이 활동 중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어느 날 자살 시도를 암시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엄마가 멀리 살고 계셔서 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위치 추적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제가 직접 집에 찾아가 구조하는 경험을 했어요. 보면 안 되지만, 그 친구 일기장을 들여다보니 장학금이 끊기고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사라지고,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다시 힘든 부모에게 전가될까 고민한 흔적이 있었어요. 열심히 살던 청년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했죠. 그때 ‘이 친구만의 문제일까?’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조사를 해보니 2020년 3월부터 6월 사이 서울에서만 20대 여성 300여 명이 자해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는 통계를 마주하게 됐어요. 그 아이들을 찾아 본인의 상황을 뭐라고 규정하는지 얘기를 들어보니 고립되어 있다는 호소가 많더라고요. 그때 확신했어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약한 고리는 청년 세대에 있을 수도 있겠다고요.
 

청년들이 말하는 ‘고립’은 어떤 상태인가요?

‘집 밖에 안 나가는 상태’의 물리적 고립을 겪는 친구들도 있지만, 혼자 사는 청년들은 나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나가야 하고, 하다못해 편의점에 가서 햇반이라도 사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까요. 문제는 사회적 고립이에요. 은둔·고립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알바가 쿠팡 물류센터 같은 곳이에요. 며칠 힘들게 일하고 번 돈으로 몇 달을 살죠. 거기엔 대화도 없고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아요. 사람들 속에 있지만 외롭고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고립이라고 얘기하죠. 그 사회적 관계에는 가족을 포함해요. 가족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태. 그 단절감이 고립됐다고 느끼게 하죠.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보다 먼저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을 만들었군요.

맞아요. 은둔·고립 청년들을 인터뷰해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자거나 온라인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었어요. 우울증은 불면도 만들지만 과수면도 초래하거든요. 또 유튜브 보는 건 돈이 안 드니까요. 그렇다면 연결의 시작점은 온라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은둔에서 탈출할 거야’ 마음먹었을 때도 가장 먼저 온라인에서 검색을 해볼 테니까요. 그래서 블로그 ‘슬기로운 은둔 생활’을 먼저 만들었고, 개발 기간을 거쳐 이후 ‘두더지 땅굴’로 발전시켰어요. 슬기로운 은둔 생활에서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방 밖으로 나오는 챌린지였어요. 2주 동안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면 상품권을 지급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굉장히 많은 친구들이 응모를 했어요. 어떤 친구는 현관 경계선에 발만 놓고 사진을 찍고, 편의점에 들어서는 발을 찍은 친구도 있었어요. “3년 만에 바깥 공기를 쐬었어요”라는 글들도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두더지 땅굴’이 은둔·고립 청년을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네요.

은둔·고립 청년 중 40% 이상이 학교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ADHD나 경계성 지능, 자폐 스펙트럼 등으로 ‘유별난 아이’ ‘느린 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란 친구도 많아요. ‘나는 늘 모자란 사람’이라는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어 사람을 두려워하고 의심이 많죠.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아무 장벽 없이 글을 읽고 쓰며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했어요. 운영자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다른 청년들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충분히 보고 나서 ‘믿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생기면 그때 한 걸음 더 들어오죠. 그렇게 신뢰가 생긴 청년 중 연간 500명 정도가 상담을 신청하거나 ‘두더집’을 직접 찾아옵니다. 정회원은 5000명이 넘었어요.

 

두더집 프로그램 중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집밥 모임’을 가장 좋아해요. 수도권 은둔·고립 청년들 중 1인 가구 비율이 50%에 가까워요. 은둔 생활로 경력이 단절되다 보니 소득이 없고 부채가 쌓인 친구들도 있죠. 그러다 보니 식생활이 완전히 무너져 있어요. 하나같이 하는 말이 “엄마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다”예요. 그래서 저희는 집밥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죠. 청년들과 텃밭에서 식재료도 같이 키워요.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서 음식이 되는 ‘완성의 경험’을 거의 처음 해보는 친구가 많아요. 그리고 은둔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파티를 좋아해요. 어제도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어요. 사람이 많은 곳은 공황 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 잘 안 가거든요. 그런데 두더집에서 명절 행사나 송년회를 하면 좋아하면서 몇십 명씩 와요.



세상과 다시 연결될 용기를 얻은 청년이 많겠어요.

그룹 대화 모임을 집약한 제주 리트리트를 계기로 제주에 귀촌한 청년도 다섯이나 있어요. 7~10일 동안 농사, 요리, 대화를 함께 하며 살아보면서 다양한 삶의 경로를 이해하게 되죠. 이 친구들은 이해도와 집중도가 낮고 협업에 어려움을 겪어서 사무직이나 물류센터, 편의점 알바를 해도 두 세달 만에 해고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민폐 끼치기 싫어서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데 제주의 삶은 도시보다는 속도가 느리잖아요. 농사를 짓고 돌담을 쌓으며 ‘느린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워요. 최근에는 가족 리트리트도 시작했어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며칠을 머물며 대화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부모들이 처음으로 자녀의 내면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생겨요.

 

제주에 정착한 청년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나요?

당장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도와줘요. 은둔이 길어지면 옷도 안 갈아 입고, 씻지도 않고, 집도 쓰레기장이 되기 쉽죠. 사회 직무 기술로 돈 버는 일 이전에 내 방을 청소하고, 낮에는 환기하고, 냄새나는 옷 안 입는 게 먼저라고 봐요. 자기를 돌보는 생활 기술, 가사 노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죠. <주부생활>의 취지처럼, 우리 모두가 주부여야 되는 거예요. 낮에 일어나서 햇볕 쬐고, 방 정리하고, 밥을 먹기만 해도 우울감이 확실히 줄어요. 그다음에야 사람을 만나고, 일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일상이 회복되면 2단계로 관계 회복을 하고, 그다음 자립 기술을 배우면서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봐요. 내년에는 제주에 고립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만들려고 해요. 책방 겸 카페 같은 수다터도 구상 중이에요.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돌담으로 집을 짓거나 담을 쌓는 기술을 배워 일할 수 있게 하고요.

 

두더집의 ‘일 경험’ 프로그램은 사회 자립 기술을 배우는 것이군요. 

맞아요. 알바는 조금씩 하지만, 주 40시간 일하기에는 아직 벅찬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활동비를 주고 일 경험을 하도록 해요. 두더집의 공간지기가 돼서 다른 청년을 맞이하고 프로그램 기획도 하고요.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공동체 안에서 다시 찾는 게 가장 중요해요.


두더집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청년 세대에 대한 죄의식이 있어요. 우리 세대는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말해왔지만, 과연 더 행복한 사회를 물려줬는가 생각하면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워요.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었지만, 지금 청년들은 오히려 ‘탈조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더 빡세고 더 절망적인 사회를 살고 있잖아요. 결국 우리가 만들어온 치열한 경쟁, 줄 세우기, 탐욕이 지금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 단절을 불러온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두더집 활동은 청년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배 세대의 한 사람으로 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에 도전하고, 서열화·계층화된 사회가 조금은 말랑해지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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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