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창작자의 도구일 뿐이다

 

남선우·장동현 쿠키플레이스 공동대표

 인간이 오랜 시간 고뇌하며 탄생시킨 작품을 AI는 몇 초 만에 재현한다. AI가 창작자의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AI가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할까 봐 걱정하는 시대다. 쿠키플레이스는 이에 맞서 안티 AI 프로젝트 ‘버틀레리안’을 가동했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다 보면 그 대상과 관련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만들고 싶은 작품을 커미션주(창작자)에게 의뢰해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커미션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를 플랫폼화한 ‘크레페’는 안전 거래를 기반으로 커미션주와 의뢰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크레페를 운영하는 서브컬처 스타트업 쿠키플레이스는 AI를 적극 활용하는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안티 AI 프로젝트 ‘버틀레리안’을 발족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버틀레리안 프로젝트 이야기에 앞서 ‘크레페’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커미션은 서브컬처 장르에서 이뤄지는 창작물의 C2C 거래의 한 형태예요. 크레페에서는 커미션주(창작자·판매자)와 신청자(의뢰자·구매자)가 서로 소통하며 주문·제작 창작물을 거래할 수 있어요. 일반적인 콘텐츠 외주와는 달리 저작권은 커미션주에게 귀속되고 신청자의 이용권은 제한되는 특징이 있어요. 크레페에서는 주로 거래되는 글, 그림 이외에도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영상, 보이스 커미션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이 오가요. 솜 인형 같은 실물 굿즈 관련 커미션도 일부 존재하지만, 디지털 콘텐츠가 전체 거래의 95%를 차지해요.

 

기존 커미션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해온 문제 중 어떤 지점을 해결하고 싶었나요?

오랫동안 SNS를 중심으로 한 직거래 형태가 유지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났어요. 특히 창작자가 돈을 받고 이른바 잠수를 타는 ‘커미션 론’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죠. 크레페가 커미션 시장을 플랫폼화하면서 커미션 론이라는 말 자체가 거의 사라졌어요.

 

‘서브컬처 시장이 여전히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 있어요. 

지금은 모든 콘텐츠가 사실상 서브컬처화되고 있다고 봐요. 레거시 미디어가 더 이상 힘을 못 쓰고 그 자리에 쇼트폼이 들어온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소비하는 ‘공통 콘텐츠’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더 주목해야 하죠.

 

덕질과 창작을 즐기는 연령대도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연령대가 무척 넓어졌어요. 예전에는 덕질을 하다 현생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덕질과 일상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30~40대들도 자연스럽게 즐기는 동시에 10대 초반의 진입도 빨라졌어요. 창작물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것도 주요인이에요. 틱톡, 릴스, 쇼츠, 트위터에 자신의 그림을 올리며 친구들과 공유하는 사람이 늘어났죠. 창작자도 혼자서는 성장하기 어려워요. 작품을 봐주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이처럼 창작물을 공개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AI가 끼어들면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거나 비윤리적으로 활용될 소지도 크다고 봐요. 또 내 그림을 어느 정도까지 올려도 되는지, 어디에 올렸을 때 안전한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죠. AI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가 안티 AI를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창작물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관인데 AI가 개입하는 순간 빈껍데기 같은 느낌이 들죠. 이런 문제의식이 ‘버틀레리안’을 시작한 배경과도 연결되나요?

정확히 말하면 안티 AI 프로젝트는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계속해오던 일이에요. 대표적으로는 AI로 생성한 창작물이 플랫폼에서 거래되지 않도록 걸러내는 시스템을 만들고, AI 콘텐츠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절차를 만드는 일을 들 수 있어요. 창작물이 AI에게 무단으로 학습되지 않도록 워터마크나 필터를 씌우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고, 거래되면 안 되는 콘텐츠에 관한 내부 규정을 정리하는 작업도 해왔죠. 그러다 어느 순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왜 이 일이 필요한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방위적으로 해오던 활동을 ‘버틀레리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묶어 공표한 이유예요.

 

창작자에게 AI는 양날의 검 같아요. AI의 등장으로 특히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요?

AI의 가장 큰 문제는 세계관에서 분리된 ‘표현만’ 가져온다는 점이에요. 지브리 화풍은 반전, 평화,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는데, AI는 그림 스타일만 따왔어요. 그래서 AI가 생성한 수많은 지브리 이미지들이 종종 기이하게 느껴졌어요. 프로가 자신의 화풍을 AI에게 학습시켜 함께 창작물을 만들면 생산성이 높아지겠지만, 아직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단계의 사람이 AI로 화풍을 만드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AI가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AI는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 도구 일부를 대체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와 같은 흐름으로요. 카메라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화가는 사라질 거라고 모두 얘기했지만 인상주의가 생겨났고, 화가라는 직업은 여전히 존재해요.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왔을 때도 사진가는 없어질 거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오히려 디지털 광고나 이커머스 등 활동 범위가 넓어졌죠.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창작과 그렇지 않은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커미션 문화에서는 AI의 어떤 점이 우려되나요?

직접 소통하며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형태의 커미션은 놀이 행위에 가까워요. 의뢰인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정확히 알려주고, 커미션주는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해석을 섞어 창작물을 내놔야 하죠. 양측의 의견과 함께 주제나 생각이 잘 어우러져야 하는데, AI가 침투하면 그런 부분을 놓치게 되죠. 내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는지 같은 궁금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보니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고요. AI로 결과물을 빠르게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죠.

 


안티 AI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중요한 건 우리가 안티 AI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창작자들에게 ‘포모(FOMO)’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크다는 거였어요. 요즘 창작자들에게 “이제 너희는 필요 없어” “AI가 나오면 너희는 쉽게 대체될 뿐이야” 같은 말을 던지곤 하잖아요. 창작자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죠. 창작자들이 불안해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AI는 창작자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창작 도구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죠.

 

많은 창작자가 버틀레리안 프로젝트를 반겼겠어요.

프로젝트 공표 당시에도 물론 반가워하는 피드백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의미 있다고 느낀 건 창작자들에게 권리를 보호받는다는 마음을 심어주었다는 점이에요. ‘버틀레리안 프로젝트가 너무 좋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도 있고, ‘덕분에 크레페를 쓸 때 더 편안해졌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외부 SNS에서도 공감한다는 의견이 계속 올라왔고요. 앞으로 프로젝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는 반응도 있어요.

 

지금은 기업들이 AI 활용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잖아요. 그런 흐름 속에서 안티 AI 프로젝트를 통해 더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AI는 정보의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생명체가 아니라, 우리가 인터넷에 써온 글과 콘텐츠를 합법적으로든, 무단으로든 긁어모아서 만들어진 ‘도구’예요. 도구가 만들어졌다는 건 그것을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인데, 문제는 ‘AI 안 배우면 망한다’ ‘지금 안 따라가면 뒤처진다’ 같은 말이 포모를 일으키면서 AI를 마치 의지가 있는 존재, 별개의 주체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AI가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면 AI를 쓰는 사람의 윤리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근원적 문제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브리 세계관과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지브리 필터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AI가 문제라고 말하지 그 필터를 사용한 사람이 문제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AI의 비윤리성은 도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도구를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허락받지 않은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학습해서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경험을 마치 내 것처럼 내놓는다면, 그게 과연 AI의 문제일까요?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쓰는 사람이 문제인 거죠.

 

AI가 창작자를 대체하는 날이 올까요?

AI를 사용하면서 느꼈겠지만, AI는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한 도구예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창작자들이 느끼는 ‘공포’라고 생각해요.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디에 어느 정도까지 올려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AI가 무단으로 학습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 때문이죠. 결국 윤리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작자 개인의 윤리도 물론이지만, 더 중요한 건 AI를 도입하는 플랫폼이나 기업이 뚜렷한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에요. 어디까지는 해도 되고, 어디서부터는 안 되는지 정확히 명시해야 쓸데없이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죠.

 

지금은 안티 AI 이야기가 다소 생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확장될까요?

창작자가 쓰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인 AI가 사람 자체를 대체할 것처럼 이야기되면서 공포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안티 AI를 이야기하는 것이 특별한 포지션처럼 보이지만 점점 더 공감대를 얻고 있어요. EU에서도 AI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는 2026년 1월 22일부터 세계 최초로 AI 기본법이 시행되죠. AI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만큼 점차 더 많은 곳에서 안티 AI를 이야기할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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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