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 시작되는 곳


이케아 코리아 마케팅 매니저 박유리

이케아의 등장은 국내에 ‘홈 퍼니싱(Home Furnishing)’ 문화를 확산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집 가꾸기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이가 많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가구 하나를 사려면 꽤 큰 결심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이케아를 만나고 나서 집을 취향에 맞게 가꾸어가는 즐거움과 효용을 알게 된 이가 많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나다운 집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더 많은 사람의 일상 속에 스며들도록, 이케아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집을 꾸준히 관찰해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집’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이케아 코리아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박유리 매니저에게 이케아가 바라본 한국의 집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 10여 년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생활했다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민을 갔어요. 한국에서 살 때는 집이 그저 먹고 자는 공간, 단순한 거주지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호주에 가서 처음으로 마당이 딸린 집에 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운동기구를 설치해준 마당에서 운동을 하고 바비큐도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TV가 없는 거실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었고요. 집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주변 자연 풍경이 아름다워 굳이 집 안에서 TV를 볼 필요가 없었죠. 그때부터 집이 삶의 취향과 방식이 담기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집을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바꿔보는 시도를 계속해서 하게 됐죠. 그 경험이 저를 이케아로 자연스레 이끈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집 꾸미기가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았죠?

맞아요. 대학 때 독립해 원룸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책상이나 수납장, 침대를 활용해 방 한 칸이지만 나름대로 침실, 작업 공간, 휴식 공간을 나누어보기도 했고요. 친구들은 ‘어차피 잠깐 사는 집인데 잠만 자면 되지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이었죠. 하지만 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편안해야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전히 나다운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팍스(PAX) 옷장 콤비네이션

이케아의 등장이 한국의 주거 문화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나요?

가장 큰 변화는 ‘홈 퍼니싱’이라는 개념이 일상에 들어왔다는 것이에요. 이케아는 가구뿐 아니라 소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함께 제안하고 있어요. 작은 쿠션 하나, 조명 하나만 바꿔도 공간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경험했죠. 제품군이 워낙 다양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선택의 폭도 넓어졌고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접근성이에요.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일단 한번 시도해볼까?’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죠. 예전에는 가구 하나를 사면 10년은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제는 계절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게 됐고요. 이케아는 1년에 네 번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이런 시즌별 변화도 집을 조금 더 즐겁게 바꿔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국내 베스트셀러 빌리(BILLY) 책장 연출 컷. 같은 책장이라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24년은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주년이 된 해였죠. 처음 진출했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이 ‘집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코로나19 전후로 매우 큰 변화가 있었어요. 유럽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오래전부터 집을 꾸미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주방 제품 매출만 하더라도 한국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거든요. 예를 들어 주방 도어장 색깔을 바꿔 집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이 그들에겐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죠. 반면 외부 활동 중심이던 한국인도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어요. 집에서 취미를 즐기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홈 퍼니싱 수준이 빠르게 높아진 데는 한국인의 특성도 반영됐다고 봐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디지털에도 능하다 보니 리뷰들을 참고해가며 다양한 것들을 해보니까요.

 

이케아는 가구를 넘어 ‘집에서의 삶’을 이야기해온 브랜드이기도 해요. 이케아가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방식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요?

이케아 디자인의 핵심 철학은 ‘데모크래틱 디자인(Democratic Design)’이에요. 이 개념에는 디자인, 기능, 품질, 합리적인 가격, 지속 가능성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가 포함돼 있어요. 즉, 예쁘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하며, 환경까지 고려해야 하죠. 이는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케아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어요. 또한 이케아는 매년 실제 가정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라이프 앳 홈 리포트(Life at Home Report)’를 발표해요. 1시간여 동안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는 집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집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지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죠. 집 곳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모은 방대한 데이터는 이후 제품 개발과 공간 제안의 중요한 출발점이 돼요. 단순히 보기 좋은 제품을 선보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니즈에 맞는 솔루션을 제안하려는 이케아의 접근 방식이기도 합니다.

 

매년 리포트를 발간하면서 포착한 한국 주거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면요?

‘2023 라이프 앳 홈 리포트’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어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집에서 생활하는 데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고 답한 한국인의 비율이 40%로 조사 대상 31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죠. 그런데 2024년 보고서에서는 ‘집에 사는 모든 구성원이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고 느끼는 비율이 22%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어요. 대부분이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이다 보니 공간이 한정적이고, 그만큼 개인 공간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제품 소비 패턴에서도 한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나요?

몇 가지 재미있는 차이가 있어요. 해외에서는 물건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오픈 수납’을, 한국에서는 물건을 깔끔하게 숨기는 ‘클로즈드 수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컬러 활용에 있어서는 과거에는 주로 심플한 컬러를 택했다면, 요즘은 팝한 컬러도 많이 활용해 홈 퍼니싱 스킬이 확실히 예전보다 높아졌죠.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요?

대형 가구보다 이동이 쉽고 공간 활용이 용이한 작은 가구와 소품이 많이 판매돼요. ‘로스코그(RÅSKOG) 카트’는 유독 한국 시장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예요. 소품 중에는 ‘이스타드(ISTAD) 지퍼백’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돼 본사에서 흥미로워하죠.(웃음) 한국의 주거 공간이 비교적 작고 레이아웃이 한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투리 공간까지도 효율적으로 쓰려는 성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최근 나타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도 있나요?

1인용 가구나 암체어 같은 개인 중심 가구의 수요가 늘고 있어요.확장형 다이닝 테이블처럼 평소에는 작게 쓰다가 필요할 때 확장할 수 있는 제품도 인기가 많고요. 거실에 큰 테이블을 놓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워크 스페이스로 바꾼다거나 소셜라이징을 하는 등 TV 없는 거실도 늘고 있어요. 예전에는 가구를 세트로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테이블 하나에 각기 다른 디자인의 의자를 배치하기도 해요.


뒤블링에(DYVLINGE) 회전 라운지 체어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공간 활용 팁이 있다면요?

스마트 조명을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집 안의 조명을 여러 개의 스탠드 조명이나 간접조명으로 구성하고, 스마트 시스템으로 제어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죠. 휴대전화로 조명의 밝기와 색을 조절해 독서, 휴식, 손님 초대 등 상황에 맞게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거든요. 음악도 재생할 수 있고요. 이케아에서도 다양한 홈 스마트 제품을 만날 수 있으니 조명만으로도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는 순간을 꼭 경험해보시길 바라요.

 

요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전체적으로 보면 퍼스널라이제이션, 즉 개인화가 가장 큰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더 이상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공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거든요. 또 한 가지 변화는 사람들의 경험이 점점 쌓이고 있다는 점이에요. 처음에는 막연히 예쁜 공간을 따라 했다면, 이제는 홈 퍼니싱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점점 또렷해지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유행이니까’라는 이유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죠. 그래서 앞으로는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는 공간보다는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려는 욕구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취향을 발견하고, 공간을 조금씩 바꾸며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더 중요해질 것 같고요. 이케아 역시 그런 변화 속에서 각자의 삶에 맞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케아 홈 스마트 연출 컷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많이 고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잘 산다’는 것이 꼭 거창한 의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순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를 마무리하며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자체로 굉장히 큰 행복이죠. 집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이라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집이라는 공간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아직도 ‘집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조언을 해준다면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하루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퇴근 후에는 어디에서 쉬고 싶은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필요한 공간과 물건이 떠오르거든요. 사실 공간을 바꾸는 일은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집을 한 번에 만들겠다기보다는 조금씩 바꿔가며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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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