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FOMO) 시대의 절약

예전의 절약은 돈을 아끼는 일이었다. 지금의 절약은 돈을 어디로 보낼지 고르는 일에 더 가깝다.


 사진 언스플래쉬(Unsplash) 

 “나 주식 계좌도 없었거든. 근데 와이프가 하이닉스 좀 사두라고 어찌나 잔소리를 하던지 말야.” 옆자리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있는 돈 다 털어서 샀어. 그때가 17만 원이었나?” 투자 이야기를 듣다가 가장 속이 쓰린 순간은 상대가 엄청난 공부 끝에 성공했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 새벽마다 리포트를 읽고, 산업 사이클을 공부하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종목을 발굴해서 투자하고, 몇 년씩 고통을 견뎌서 얻은 결과라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주식을 하면 누구라도 사봤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박이라니. 아니 대체 왜 우량주가 코인처럼 움직이는데? “그냥 샀는데 10배 됐지 뭐~” 나는 괜히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이미 팔아버린 주식들의 이름이 차갑게 식어가는 커피 위로 거품처럼 떠다녔다. 그때 팔지 말걸…. 가진 돈 다 넣을걸…. 우울한데 치킨이나 먹을까 하다가 4000원이라는 배달비를 보고 앱을 닫았다. 400만 원 손절한 나와 4000원이 아까운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이다. 배달비를 아낀다고 SK하이닉스를 팔아버린 아쉬움이 달래질 리 없다. 그날의 절약은 스스로를 벌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이닉스 팔아버린 놈이 치킨은 무슨.”

 

모두가 자신의 초라함과 싸우고 있다

예전에는 옆집이 얼마나 버는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선명한 비교가 펼쳐진다. SNS를 열면 누군가의 성공이 바이럴되어 피드에 업데이트된다. 직장인인데 강남으로 이사 갔다는 사람, 코인으로 10억 벌었다는 사람, 미국 주식으로 조기 은퇴했다는 사람, 사업으로 100억 집을 샀다는 사람. 나는 열심히 사는데 뭔가 안 되는 것 같고, 남들만 다 잘 사는 듯한 느낌.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고액 연봉에 대기업을 다닌다. “그러게 투자 잘했어야지. 무작정 절약이 답이 아님.” 그들의 훈수가 하나둘 쌓인다. 어디를 가도 비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은 곧 내 실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교할수록 빈곤해지는 자신과, 그럴수록 커지는 불안에 사람들은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자산이 오를수록 포모(소외 공포증)가 온다는 글이 커뮤니티를 채운다. 코인 유튜브를 보고, 주식 리포트를 읽고, 부동산 카페에 가입하고, 아낀 돈을 불리기 시작했다. 절약은 기본이고, 어떻게 돈을 불릴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평생 거지처럼 아끼기만 했는데 후회된다.” 여행도 참고, 외식도 줄이고, 주말엔 컵라면을 먹으며 버텨서 주식과 코인에 투자를 했지만 큰 손실이 났다고 했다. 그 돈으로 가족들이랑 여행 갈걸,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쓸걸 그랬다는 글을 쓴 이는 SK하이닉스 직원이었다. 댓글은 100개를 훌쩍 넘겼다. 절약만 믿으라고 가르친 세대가 문제라는 사람, 네가 한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사람, 배부른 소리라며 글쓴이를 비웃는 사람까지. 각자 말은 달랐지만, 결국 모두가 절약의 효용을 의심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껴야 잘 산다고 배웠다. 아끼고 참고 모으면 성실한 사람이었고, 통장 잔액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내일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공식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껴서 100만 원을 모으는 동안 물가는 오른다. 월급을 아껴 예금을 넣는 동안 집값은 가파른 속도로 움직인다. 누군가는 현금이 쓰레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현금도 종목이니 모아두라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신중하게 따져보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산 주식으로 인생을 바꿨다. 언제부터인가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다.

 

롤렉스를 차고 결정사 찾는 젊은이들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손해 보기를 싫어한다. 롤렉스를 사는 건 사치가 아니라 되팔아도 남는 확실한 투자다. 결혼정보회사에 돈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인 소개로 시간을 낭비하느니 스펙으로 걸러진 사람을 만나는 게 실패 확률이 낮다. 실패하기 싫은 사람들의 소비는 오히려 더 양극화된다. 무작정 아끼는 게 아니라 쓸 곳에는 과감하게 쓰고, 관심 없는 영역에서는 놀랄 만큼 아낀다. 똑똑한 소비로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요즘 사람들. 절약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세대의 언어처럼 들리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절약은 이제 촌스러운 일일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블로그 이웃의 댓글 하나를 며칠째 곱씹고 있다. “8년 동안 국장만 팠는데, 드디어 결실을 맺었네요. 결국 버티는 게임이더라고요. 하락장에서 멘탈 잡고 맨날 구질구질하게 아껴서 코스피 샀어요.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조롱당해도 오기로 기다렸네요. 순자산 100억 달성한 기쁨에 댓글 달고 갑니다.” 절약이 촌스러워진 세상에서 버티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8년 동안 마음을 다스린 블로그 이웃의 사연을 읽고 또 읽었다. 투자는 꼭 정신 수양 같다는 생각을 하며 유튜브를 열었다. “반도체 다음은 우주 테마가 유망합니다.” 어… 음… 마지막으로 우주 테마에 몸을 실어볼까…. 스페이스엑스가 상장을 해? 그러면 테슬라도 같이 떡상한다고? 테슬라… 가… 가즈아…. 예전의 절약은 돈을 아끼는 일이었다. 지금의 절약은 돈을 어디로 보낼지 고르는 일에 더 가깝다. 나는 내 돈을 테슬라에 보내기로 했다. (이 글이 올라갈 즈음엔 팔았을 수도 있다.) 테슬라 차는 없어도 언젠가 주식으로 화성 갈 거니까. 우리 모두 각자의 포모와 싸워서 이기길 바라며 외쳐본다. 영~차!

WRITER 대치대디 “여보는 글을 써야 해.” 아내의 한마디로 시작한 블로그에 ‘상급지 갈아타기 후기’를 연재하다 책까지 낸, 대박을 꿈꾸며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 «직장인입니다 강남으로 이사 갔고요 질문 받습니다»의 저자.


Editor 김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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