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UT OF THE FAMILIAR 🪟 

때로는 낯선 풍경보다 새로운 시선이 익숙한 일상을 환기하는 더 좋은 방법이 된다. 올가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서 마주할 수많은 작품 가운데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덟 장면을 골랐다. ‘포커스’와 ‘키아프 플러스’를 중심으로 지금 눈여겨볼 갤러리와 작가, 그들이 보여주는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면면을 들여다본다.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예술이 안내하는 낯선 감각을 따라가 보자.




 Frieze Seoul 2026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의 ‘포커스(Focus)’는 젊은 갤러리와 작가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섹션이다. 큐레이터 이설희의 자문 아래, 2014년 이후 설립된 16개 갤러리가 각각 한 명의 작가를 내세운 단독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다. 올해는 처음으로 아시아 중심에서 벗어나 유럽과 미주까지 참여 범위를 확장했다. 인터랙티브 디지털 환경부터 장소 특정적 벽화, 직조, 목판화와 동판화까지 매체 역시 폭넓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갤러리 네 곳의 작가를 만나보자. 서로 다른 지역과 배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변형과 정체성, 미래에 대한 상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동시대 미술의 다층적인 풍경을 펼쳐 보인다.


FOUNDRY SEOUL
오묘초 Omyo Cho

오묘초의 조각에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소설을 먼저 쓰고, 그 안에서 구축한 세계관을 조각과 설치, 영상 등 현실의 형태로 옮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야기는 특히 먼 미래에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미래의 존재가 오늘날의 흔적을 발굴한다면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와 같은 상상 속에서 유리와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등의 물질은 단순한 조각 작품의 재료를 넘어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로 전달하는 일종의 ‘유물’이 된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생명체가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과정을 한층 확장한다. 미래의 생명체와 고대 해양생물의 유물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식물 형태의 철과 유리 구조물, 비정형의 덩어리로 포스트휴먼의 풍경을 그려낸다. 오묘초의 작품은 낯선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한다.


PIPE GALLERY
차승언 Seungean Cha

직조와 회화 사이를 오가는 차승언. 섬유미술과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는 전통적인 직조 방식에 염색과 페인팅을 결합하는 독특한 표현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평면 회화처럼 보이면서도 직물의 물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화면이 작업의 특징이다. 특히 20세기추상회화의 조형 언어를 직조의 구조로 번역하고 다시 변주하는 ‘참조적 직조 회화(Referential Weaving Painting)’를 통해 회화의 역사와 섬유의 전통을 한 화면 위에 겹쳐놓는다. 이성자, 애그니스 마틴, 애니 알베르스, 헬렌 프랑켄탈러 등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참조하면서,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시대적 제약 속에서 이어온 삶과 선택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촘촘하게 설계된 직조의 질서 위에 염료가 번지고 붓질이 더해지면서 계획과 우연, 시각과 촉각, 물질과 환영처럼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한다. 직조와 회화의 경계를 오가며 결국 오늘날 회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CON
김민희 Minhee Kim

기술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진 세계에서 우리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 김민희는 1990년대 이후의 사이버펑크와 테크노 오리엔탈리즘,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인간과 기술이 뒤섞인 세계와 그 안의 신체를 그려왔다.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가져와 파편화하고 왜곡하며, 젤 미디엄과 유화를 두껍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다시 구축한다. 매끈하고 평면적인 디지털 이미지가 물감과 붓질을 통해 물질적인 회화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신체 역시 하나의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이보그적 신체는 젠더와 욕망,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이미지가 우리의 몸과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질문한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그리는 벽화를 중심으로 디지털 환경의 감시적 시선 아래 놓인 사이보그적이고 여성화된 신체를 펼쳐 보인다.

 

GAA
요한나 자이델 Johanna Seidel

현실의 풍경은 요한나 자이델의 캔버스에 도착하는 순간 한 편의 신화로 변한다. 독일 드레스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자연을 주요 소재로 삼아 역사와 신화, 꿈에서 가져온 상징에 개인적인 기억과 상상을 뒤섞으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보라와 분홍, 주황, 녹색 등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화면에는 인물과 동식물, 풍경이 등장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세계에 속한 이미지들이 한데 뒤섞여 낯선 장면을 만들어낸다. 특히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변화와 변형에 대한 관심이다. 불 속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전해지는 도롱뇽이나 주기적으로 지구 곁을 찾아오는 핼리 혜성처럼 신화와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프는 적응과 재생, 변화와 운명이라는 여러 의미를 품는다. 이처럼 자이델은 현실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에 기억과 상상, 신화적 상징을 포개며 자신만의 회화적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Kiaf Seoul 2026 

신진 작가와 갤러리를 소개하기 위한 기획 섹션으로 출발한 ‘키아프 플러스(Kiaf PLUS)’는 이제 키아프를 대표하는 주요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독창적인 감각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가는 갤러리를 중심으로 익숙한 흐름 너머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국내 8곳과 해외 11곳, 총 19개 갤러리가 참여해 한층 폭넓어진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국내외 서로 다른 지역과 배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갤러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각자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눈여겨볼 네 곳의 갤러리가 선보이는 작가 가운데 독자적인 작업 세계가 돋보이는 한 사람씩을 선정했다. 서로 다른 매체와 언어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만들어온 네 작가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자.


CDA
김소영 Soyeong Kim

도시를 걷다 문득 눈앞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김소영은 일상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출발점으로 도시의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과 그 안에 공존하는 환영과 공허의 감각을 회화로 옮긴다. 현실의 풍경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보다 회화적 모호함을 더해 익숙한 장면을 어딘가 낯설고 아득한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작업 방식 역시 이러한 감각을 뒷받침한다. 장지 위에 아크릴 물감을 수직의 결을 따라 수없이 중첩하며 종이가 지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아크릴 특유의 차갑고 인공적인 물성을 한 화면 안에 겹쳐놓는다. 그렇게 여러 겹의 붓질을 통과한 도시의 한순간은 현실의 기록과 희미한 기억 사이에 오래 머문다.


TSUTAYA BOOKS
히로시 모리 Hiroshi Mori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대신, 이미 익숙한 이미지를 꺼내 낯선 짝과 충돌시키는 것. 히로시 모리의 작업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는 서양 미술사의 명화와 팝아트부터 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게임 등 대중문화 요소를 자유롭게 차용하고 재조합하며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왔다. 반 고흐의 회화부터 앤디 워홀의 매릴린 먼로까지 이미 수없이 복제되고 소비된 이미지는 그의 화면에서 일본의 캐릭터와 게임 그래픽을 만나 또 한 번 변형된다. 특히 픽셀을 연상시키는 구성과 매끄럽고 인공적인 화면은 원본과 복제, 순수 미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아크릴릭과 우레탄, 펄 안료, LED-UV 경화 소재 등 현대적인 재료와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건너온 이미지의 충돌은 익숙함 속에 작은 이질감을 만들어내며 과거의 이미지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보게 한다.


V&E ART
토마 드보 Thomas Devaux 

토마 드보는 종교적 성상에서 소비사회의 상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떤 이미지와 대상을 욕망하고 숭배하는지를 탐구해왔다. 사진을 회화와 추상의 영역까지 확장한 작업에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숭고함과 일상적인 것 사이의 긴장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러한 드보의 관심은 소비사회를 향한다. 대표 연작 ‘욕망의 모호한 대상(Cet Obscur Objet du Dsir)’은 루이스 브뉘엘의 1977년 동명 영화에서 출발해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작동하는 욕망을 들여다본다. 슈퍼마켓의 진열대와 상품을 촬영한 뒤 이미지를 확대하고 흐릿하게 만들어 빛과 색이 번지는 추상적인 화면으로 변환하고, 금박이나 반사되는 소재 등을 더해 평범한 상품에 마치 성상과도 같은 오라를 부여한다. 결국 드보가 포착하는 것은 상품 자체라기보다 평범한 대상이 욕망을 통해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GALLERY H-U-E

박영환 Younghwan Park

박영환은 먹과 한지를 기반으로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미해지고 다시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을 시각화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변화하고 소멸해가는 과정, 그리고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흔적이다. 구체와 창문처럼 화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형상 역시 시간과 기억, 감정의 상태를 드러내는 조형적 장치로 작동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을 비물질적인 영역으로 넓혔다. 작가는 삶에서 경험한 사건과 감정이 어떻게 우리 안에 머물고 다시 떠오르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먹이 한지에 스며들고 번지거나 지워지는 과정은 선명했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고 또 다른 흔적으로 남는 시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반추’ ‘사이’ ‘버닝(Burning)’처럼 서로 다른 장면과 정서를 담은 작업 역시 결국 지나간 것이 현재에 남기는 감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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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송(아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