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미식 신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 중에는 국내 최연소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충후 셰프가 있다. 최근 반얀트리 서울 페스타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충후 셰프는 빠르게 바뀌는 미식 트렌드와는 별개로 좋은 요리를 향한 본질과 철학은 변치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 서래마을 제로컴플렉스를 다녀온 이들은 당시 느낀 신선함과 놀라움을 아직도 회고합니다.
당시 제가 추구한 요리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있었어요. 그래서 꽉 찬 맛보다는 여백과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런 접근을 독특하고 낯설게 느낀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후 미식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며 저희가 개척한 스타일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시장과 대중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죠. 당시의 신선함과 놀라움이 이제는 미식계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셈이에요. 여전히 ‘빈틈없는 맛’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재료 고유의 맛과 특성을 살린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최근에는 확실히 높아졌다는 걸 느껴요.
올해 4월부터 반얀트리 서울 페스타를 이끌고 있어요.
좋아하는 셰프이자 형님 같은 강민구 셰프의 강력한 추천이 계기가 되었어요. ‘페스타 바이 민구’에서 6년간 많은 영감을 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계적인 호텔 시스템 안에서 협업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반얀트리 서울’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메뉴, 콘셉트 등을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공간과 음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반얀트리 서울은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예요. 남산이 가깝다 보니 풍부한 계절감과 함께 호텔 특유의 안락함과 설렘, 품격과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죠. 반얀트리 서울의 입지와 공간적 특수성, 그리고 제 요리 철학이 잘 녹아든 유기적인 메뉴를 페스타에서 구현하고자 했어요. 계절감을 살리는 식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익숙한 재료가 주는 편안함은 유지하되 기존보다 더 풍성하고 과감한 플레이팅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페스타 바이 충후에서 새로운 다이닝 콘셉트인 ‘이노베이티브 센스 다이닝’을 선보인다고요.
간단히 말해 ‘익숙한 재료와 요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는 뜻이에요. 여기에는 익힘 정도, 재료의 조합, 잘 알려지지 않은 식재료 소개 등이 포함될 수 있죠. 예를 들면 페스타 바이 충후에는 메밀 타르트 위에 허브와 식용 꽃이 올라간 시그너처 메뉴가 있어요. 신맛을 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레몬 대신 상큼한 신맛을 지닌 다양한 허브와 꽃을 과감하게 활용해 풍부한 미감을 더합니다.
실제로 마주하는 손님들의 미식에 대한 관심이나 반응 중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찾았다면, 요즘은 ‘기억에 남는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맛뿐 아니라 요리의 스토리, 조리법, 재료의 조합 등 다층적인 경험을 기대하는 거죠.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는 요리인지,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어떤 감정으로 경험했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결국 미식은 감각을 넘어 정서적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인상 깊은 순간을 찾아 다이닝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세계적인 미식 신의 흐름에서 특히 유의 깊게 보고 있는 철학, 트렌드가 있나요?
세계 미식 신은 빠르게 변하지만, 셰프들의 철학은 크게 변하지 않아요. 셰프들이 자국의 음식과 문화를 더욱 깊게 탐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어요.
개인적으로 즐기는 식사는 어떤 형태인가요?
한식보다는 양식을 선호하고, 가벼운 브런치나 샌드위치를 즐겨 먹곤 해요. 간단하지만 좋은 재료와 균형 있는 맛을 중요하게 여기죠.
요리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요리를 시작한 이후 한결같이 고수해온 철학은 ‘좋은 요리는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다’예요. 음식이나 요리에서는 결국 식재료의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는 맛과 경험을 더할지 항상 고민합니다.
우리나라의 내추럴 와인 붐도 제로컴플렉스를 기점으로 시작되었죠? 앞으로 어떤 흐름을 주도할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내추럴 와인처럼 한때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은 흐름들이 있죠. 앞으로는 다이닝이 점점 ‘복합적인 문화 경험의 장’으로 진화해갈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로드숍 셰프의 창의성과 호텔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만나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큰 기대를 하고 있어요. 미식 트렌드가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는 요즘, 셰프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늘어났어요. 그럴수록 셰프 개인의 스토리와 감각에 호텔의 운영력과 브랜드 파워가 더해지면 보다 완성도 높은 다이닝 경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페스타 바이 충후의 정원에서 람보르기니의 신차를 전시한 적이 있는데, 손님들이 식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슈퍼카를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다층적인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다이닝은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 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로드숍에만 있었다면 이런 확장된 경험을 실현시키기 어려웠을 거예요.
요즘 요리, 맛집 콘텐츠가 인기인데, 즐겨 보는 콘텐츠가 있나요?
유튜브 채널 ‘셰프 안성재’를 즐겨 보고 있어요. 제가 직접 출연한 적도 있어서인지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이처럼 셰프들이 직접 생각을 전하는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소비자와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아요. 요리에 담긴 철학이나 과정에 대한 이해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요. 결과적으로 미식에 대한 관심을 늘리면서 미식 신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파인다이닝이 한차례 침체기를 겪다가 요즘 다시 붐이에요. 실질적으로 미식 신을 움직이는 입장에서 이러한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요리 경연 콘텐츠 영향으로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죠. 다만 한 끼에 수십만 원 하는 식사에 대한 수요가 지속 가능할지, 또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구조상 마진이 높지 않다는 점 등 현실적인 한계도 분명 존재해요. 그래서 요즘은 파인다이닝을 어떻게 더 많은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소개하고, 일상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합니다. 음식의 완성도만큼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과 맥락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단순히 특별한 날에 한번쯤 가보는 곳이 아니라 조금 더 즐겁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미식의 놀이’처럼 느껴졌으면 합니다.
요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요리를 통해 ‘정답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과 맛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이유와 매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하나의 방식이 옳다고 단정 짓기보다 다양한 시도와 해석을 존중하는 태도가 요즘 시대에 더 어울리죠. 저 역시 열린 시선으로 요리를 대하고 싶고, 그런 태도가 손님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요?
음식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며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단순한 맛 이상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죠. 그만큼 셰프로서도 요리를 단순히 기능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도와 스토리를 담은 하나의 ‘콘텐츠’로 접근하고 있어요.
앞으로 파인다이닝 신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거라 예상하나요?
파인다이닝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고 있지만, 결국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얼마나 정직하게 잘 지켜내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아요. 화려한 테크닉이나 비주얼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재료의 본질을 존중하고 손님의 감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기본적인 것들이 진짜 감동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파인다이닝은 진정성 있는 경험으로서 한발 더 나아갈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더 알려나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페스타 바이 충후를 통해 제 요리의 정체성과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최근 페스타가 2025 와인 스펙테이터 1 글라스를 수상했어요. 이는 단순히 좋은 와인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넘어, 음식과 와인이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다이닝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금 가장 집중하고 싶은 건 페스타 바이 충후에서의 미식 경험을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는 것이에요. 그 안에서 새로운 미식의 방향성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인건비, 재료비 등 아무런 제약 없이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다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요리를 선보이고 싶나요?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와 함께 제 요리 철학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자체를 처음부터 설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건축에 관심이 많고, 공간이 요리의 콘셉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공간에 앉아 어떤 동선을 지나 요리를 마주하게 되는지도 미식 경험에 깊은 영향을 주니까요. 빛과 온도, 재료의 성질까지 고려한 공간 안에서 ‘경험 전체’를 디자인하는 다이닝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레스토랑이라면 제 창작욕을 더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IMAGE 반얀트리 서울 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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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