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언어
짧은 문장 틈새마다 계절이 찰랑이고 감정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차정은 작가의 시는 요즘 젊은 이들이 가장 뜨겁게 읽는 청춘의 언어다.
열아홉 살 시인의 언어는 지금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텍스트다. 차정은 작가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고등학생 시절 독립출판으로 낸 «토마토 컵라면»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신작 «여름 피치 스파클링»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다시 한번 청춘의 열망을 증명했다.
‘여름’이라는 강렬한 계절적 이미지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소한 순간들이 뒤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잠시 멈춰서 자기만의 감정을 덧입히게 한다. 그 덕분에 차정은 작가의 시집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참여적 문화로 확장되며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시라는 장르의 어떤 매력 때문에 지금까지 꾸준히 쓰고 있나요?
간단하지만 깊은 표현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으로서는 글자 수가 적어 부담이 덜한 데다 그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매료되었고요.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도 특별해지는 기분, 누군가의 평가보다 ‘내 생각을 써도 된다’는 것도 좋았어요. 덕분에 시 쓰기는 어린 시절 내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어요. 글짓기 대회나 독후감은 일정한 답이 있지만, 시는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독립출판으로 낸 «토마토 컵라면»은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직접 시집을 출판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어요. 저는 사랑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예요. 특히 글과 시에 이런 감정을 자주 쏟아냈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결심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써 내려온 나의 언어들, 오로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 내 청춘의 전부를 담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중 선택한 수단이 책이었어요. 책은 내 청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가 사랑하는 가장 큰 일부 중 하나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한 권의 책에 담긴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토마토 컵라면» «여름 피치 스파클링» «유쾌한 워터멜론» «껍질 방정식» 등 작품 속에서 ‘여름’ 이미지가 자주 등장해요. 여름이 특별한 계절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름이 선사하는 강렬함을 사랑해요. 제가 숨 쉬는 여름들은 곧게 내리고, 뜨겁게 일렁이는 순간이 많았어요. 유독 추억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고요. 평소라면 무심히 넘겼을 일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사랑했던 순간들, 좋아하는 걸 만들어내는 순간들처럼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계절이에요. 더위를 핑계로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이 진하게 스민 계절입니다.
작품 제목이 늘 신선하고 독특해요.
저는 제목이 먼저 떠올라야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어요. 거의 모든 책은 가제목을 떠올리고, 그에 맞춰 원고를 썼어요. 시를 담을 집을 지어두고, 그 속을 천천히 채워나가는 편이에요. 초기에는 쓰고 싶은 주제가 많았던 만큼 제목이 금방 떠올랐고, 금방 꽂혔어요. 덕분에 거의 모든 제목은 직감을 따라갔어요.
시각적인 표지가 시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 직접 참여하거나 의견을 보탠 부분이 있나요?
자가 출판한 책들의 표지는 직접 제작했고, 출판사와 작업한 책들도 참여하려고 노력했어요. 표지는 독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중요한 얼굴이라 생각해요. 표지와 글이 어우러졌을 때의 시너지, 책을 마주했을 때 차정은이라는 이름이 떠오르길 바라고 있어요. 특히 «여름 피치 스파클링»은 사진과 출신 동기와 표지 촬영 과정 전부를 함께했기에 더 애정이 가요.
시집과 협업한 티셔츠가 출시되거나, 표지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고, 시구를 SNS에 공유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그만큼 시가 독자들에게 일상화, 대중화된 것 같아요. 시를 읽는 행위 자체가 ‘책을 읽는 것’에서 ‘일상의 일부’로 변해가고 있는 흐름이 아닐까요. 텍스트 힙, 특히 텍스트의 시각화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닿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독자가 시를 읽는 소비자에서 재배포하고 재해석하는 2차 창작자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죠. 배경화면, 굿즈, SNS 공유 등은 모두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시’라는 참여 행위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는 축약과 은유가 강해 가장 읽기 어려운 장르로 꼽히곤 합니다. 게다가 1인당 독서량은 최저를 기록하고, 디지털 환경 등 읽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취약해진 지금, 오히려 시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개인적으로 짧은 시 한줄 한줄에 많은 의미와 감정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바쁜 일상과 짧아진 집중 시간 속에서 장편소설처럼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완결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현대 독자들의 니즈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축약과 은유, 추상성은 처음이 어렵지, 오히려 독자에게 자기만의 의미를 붙일 자유를 건넨다고 생각해요. 정답이 없는 읽기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시는 해석의 여지를 주는 열린 텍스트예요. 불확실성과 피로가 큰 시대인 요즘, 함축적인 언어가 주는 위로가 있지 않을까요? 장황한 설명보다 한 문장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으니까요.
일부 독자는 작가님의 시집을 두고 “시는 아직 어렵지만, 시에서 쓰는 소재들이 일상적이라 좋다”고 말합니다. 작품의 주제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저는 특별한 사건보다 스쳐가는 장면에서 영감을 발견해요. 목욕하면서 떠오른 단어를 메모하기도 하고, 창밖으로 저녁이 떨어지는 풍경, 슈퍼마켓 진열대의 사소한 색 배열이나 평범한 물건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곤 해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마른 빨래 냄새나 텅 빈 의자도 그날의 빛이나 온도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요. 어떤 거창한 주제보다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서 시작할 때 더 솔직해지고, 그 작은 평화와 일상들이 모여 하나의 영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 읽는 순서나 함께 곁들이면 좋은 음악, 또는 읽기 좋은 순간을 추천한다면요?
굳이 첫 장부터 읽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이 끌리는 제목, 나 자신과 닮아 보이는 시부터 펼쳐 보는 것을 추천해요. 노래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름에 변함없이 듣는 노래인 ‘유어 소 굿-셰이디드(Ur So Good – SHADED)’를 추천하고 싶어요. 아침을 마무리하기 전,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서, 혹은 노곤히 잠에 들기 전처럼 잠시 멈춘 틈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 시를 통해 순간의 추억에 머물게 해주고 싶어요.
독자들이 작품을 곱씹고 오래 곁에 두고 싶게 만드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른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책 속에 사랑하는 것, 반짝반짝 빛나는 꿈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 독자들은 꿈을 꾸기 시작하는 나이대가 특히 많아요. 꿈을 꾸는 이들의 눈동자처럼, 반짝거리는 꿈을 꾸는 독자들의 꿈이 제 꿈에서 엿보인 게 아닐까 싶어요.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청춘’을 꼽을 수 있는데,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주제나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담백한 사랑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대놓고 타오르는 사랑을 말하곤 했지만, 덜어낼 대로 덜어낸,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 안의 풍경을 기록하는 일 같아요. 어떠한 답을 주기보다도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여백은 건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정말 좋아하는 것을 쓰고, 정말 사랑하는 것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요.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시와 편집디자인을 접목해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구체적인 계획은 말하지 않는 편이어서, 좋은 소식은 결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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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Photographer 박나희